미학

번외) 일상적인 것의 변용 - 아서 단토의 예술 철학

flame52 2022. 12. 28.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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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토의 예술철학에 이르는 과정

 

단토가 이 책을 쓰게 된 출발점은 사실 그의 뮤즈인 뒤샹인 줄 알았지만 앤디 워홀의 공헌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워홀의 깜찍한 발상이 단토에게 의문을 갖게 만듦으로써 그의 예술 철학은 시작된 것이다. 회고하길, 이스트 74번가 스테이블 갤러리(stable 이것도 좀 웃기다. 갤러리리면서 스테이블은 너무 미스매치 아닌가)에서 열린 ‘브릴로상자’의 복제품들이 층층이 쌓여 있는 전시회에서 단토는 철학적 흥분을 느꼈다고 했다. 브릴로 상자는 우리식으로 보면 슈퍼타이세제 박스다. 세제가 담긴 종이 박스 말이다. 그런데 그 박스를 실크스크린으로 합판에 인쇄해 만들었을 뿐 실제 종이 세제박스와 다를 게 없었는데 그것들이 예술이랍시고 전시가 되고 있던 것이었다.

도대체 그런일이 어떻게 가능하게 된 거지?

실재하는 사물과 식별 불가능한 예술작품이라는 점, 그리고 굳이 찾자면 미적일 수 있지만(브릴로박스 디자이너는 사실 그 뒤로 작품도 하고 예술도 했다.) 어쨌든 이제 예술은 미적 관조의 대상이 아님을 발견하면서 단토는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생각하게 됐고, 그 때문에 예술의 정의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예술의 정의가 뭐길래

단토는 이를 계기로 이제 기존의 미적 관조의 대상이었던 예술이 종말 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예술의 종말이라는 책도 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예술을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정의가 있어야 한다. 이것도 예술이고 저것도 예술인데, 예술이라는 게 뭐길래 모두 예술인 걸까. 예술의 자기의식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정의는 예술을 포함해 알다시피 철학이 할 일이었다. 그래서 나온 게, 게임처럼 예술은 새로운 것이 계속해서 나오고 변화하기에 정의에 경계를 짓는 것은 어렵다고 인식되었다. 이후 다시 회자되겠지만, 예술을 포괄한다면, 조지 디키의 예술제도론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예술계라는 말은 단토에게서 시작되었지만, 디키가 더 잘 활용했다고 보인다.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예술계가 인정한 것이 예술이라는 것이다.

 

 

단토의 예술 정의

단토는 당연히 생각이 달랐다. 디키가 자신의 논문 ‘예술계(The artworld)’의 분석을 토대로 ‘예술제도론’을 확립했지만, 그건 단토의 생각과는 달랐다. 그래서 단토를 계승한 듯 보이는 디키를 자기 자식으로 표현하며 오이디푸스를 빗대 자신의 예술철학과 다른 디키의 철학에 맞선다는 의미로 ‘나는 나의 자식과 싸우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낳은 자식에 게 굴복해서는 안된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꽤 유머러스한 분이다.

단토는 지각적으로 식별불가능한 사물과 예술을 통해 그들이 범한 오류를 찾아낸다. 단토에 따르면, 그들은 예술을 지각 범위 내에서 정의하려 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단토에게 예술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있기 때문에 식별이 가능한 것이다.

단토가 생각하는 예술, 그러니까 모든 기존의 미적관조를 그리고 모방을 목적으로 한 예술과 개념예술 모두를 포괄할 수 예술의 정의를 내적인 것에서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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