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플레이하는 경험이 무가치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도 게임에 깊이 빠져 보기!
게임은 1도 못하는 사람이 게임에 대해 지식을 쌓는다고 게임을 잘 안다고 할 수 있나?
'게임 잘 안다'는 말이 듣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서술적지식은 충만하나 절차적 지식의 의미에서 게임은 발로 하는 수준이라 참 우습다.
그럼 계속해서
오늘의 논문은, 이다민박사의 '실패 기계: 컴퓨터게임 경험의 가치에 관하여'를 읽으며 드는 생각 정리.
1. 게임이 예술적 가치가 있는지, 게임의 플레이가 예술적 가치가 있는지. 둘 다 인지.
2. '그웬 브래도포드' 분석에 따라 게임은 진정한 성취이고 게임 경험은 가치가 있다는 성취기계 논변을 한 타비노어.
그럼 그웬 브래도프드 분석은 첫번째로 그 활동이 의도적으로 이루어져야하고, 두 번째로, 어떤 활동이 성취이기 위해서는 그 결과가 의도적으로 완수되는 과정에 어려움(difficulty)이 내재되어 있어야 한다.(이다민 2023, p18)
3. 게임이 제시하는 전유희적 목표 자체가 쓸모나 가치를 갖지 않더라도, 게임은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의도적이고 자발적인 분투라는 점에서 진정한 성취다.(이다민 2023, p19) 전유희적목표, 비효율적인 수단 때문에 오히려 게임의 경험이 성취가 된다는 것이다.(타비노어 2017, p109)
4. 허구적인 것에서 이룬 성취나 승리는, 그 경험 또한 허구적인가. 허구적인 것은 가치가 없는가? 그래서 그 경험은 가치가 없는 것인가? 나는, 나의 '행위성'은 허구가 아니다고 말하고 싶다.
5.게임플레이어(감상자)가 행위하지 않으면, 경험을 얻을 수 없다. 경험이 성취에 이르게 한다.
6. 타비노어가 게임이 성취감이라는 즐거움을 제공한다고 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게임에서 이루어지는 성취의 경험이 가치 있는 이유가 그 경험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있는 것처럼 설명하기도 한다. (이다민 2023, p24) 의도적인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분투하는 의지(striving will)'가 발휘된다고 말하며, 분투하는 활동 자체가 게임 경험이 가지는 가치의 중심이 된다고 주장한다.
7. 타비노어의 주장은, 게임 경험의 가치가 가치있는 목표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경험의 결과가 아닌 과정에 있다는 주장을 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이다민 2023, p24)(인용 분투하는 활동 그 자체가 더 효과적으로 가치의 중심이 될 수 있다. (타비노어 2017, p110))
8. 성취기계 논변의 핵심 주장은 게임의 세계가 현실과 구분되는 역역이라 하더라도 게임에서 이루어지는 성취가 현실에서의 그것과 동종의 성취로 호소하며, 게임 경험의 가치를 옹호하는 것.(이다민 2023, p25)
9. 현실과 게임의 가치 체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혼돈할 수 있다. 게임은 '가치명료성'을 가진다. 현실은 훨씬 더 미묘하고 복잡한데, 게임과 같이 가치가 명료한 방식으로 드러난다고 가치체계와의 차이를 무시할 수 있다. 응우옌이 말한 '가치명료성의 환상'이다. (이다민 2023, p25)
10. 게임 경험의 가치를 게임이 제공하는 성취로 본다고 했을때, 과정에서의 분투로 인해 느끼는 성취이지 실패와 성공의 이분법에서 나오는 성공이라는 결과에 따른 성취감은 아니지 않을까?
결과가 실패든 성공이든 내 의도에 따른 행위를 통해 느끼는 성취 아닐까. 물론 성공하면 큰 성취감이라는 걸 느끼겠지만, 여기서의 성취는 성취감이라는 개념보다 무언가 해보는 것이라는 의미의 성취로 타비노어가 쓴게 아닐까 한다. 여러번의 실패의 과정 속에서 다시 도전하는, 예컨데 ‘체력을 단력하기 위해 혹독하게 훈련하는 경험(p24)’의 과정처럼 게임도 성공하기 위해 겪는 여러 번의 실패의 과정 말이다. 이 모든 것이 경험이고, 그 경험으로 내가 도전해 보고 싶은 것을 결과에 상관없이 해봤다는 거, 현실이라면 더더욱 횟수에 제약이 많았겠지만(기회가 단 한번 뿐인 경우도 있다. 목숨이 하나 인 것 처럼), 게임은 그런 점에서는 자유롭다는 것이다. 게임에서의 죽음은 언제나 부활을 기약한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어쨌든 이다민은 게임 경험의 가치가 성공 보다는 적절한 종류의 실패의 견지에서 더 잘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이다민 2023, p27)
안전하게 실패할 수 있는 기회 제공
11. 타비노어의 성취기계 논변은 게임이 제공하는 성취의 기회 자체를 과도하게 강조함으로써 그 기회가 사실 성취감을 주기에 알맞도록 인위적으로 만련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고 이다민은 주장한다. p26 타비노어의 이론의 세 가지 결함을 이야기한다.
첫 번째, 성취 기계 논변은 게임 속 성취가 현실에서의 성취보다 가치 면에서 열등할 수 밖에 없음을 불가피하게 함축한다. 두 번째, 성취 기계 논변은 게임 경험의 가치를 그 경험의 결과에서 찾음으로써 게임 속에서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의 중요성을 놓친다. 세 번째, 성취 기계 논변은 게임에서의 성취가 진정한 성취임을 강조함으로써 가치 명료성의 환상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
12. "문학의 경우 주인공이 겪는 비극은 외부에서 관찰함으로써 부정적 감정을 겪는 반면, 게이플레이어는 자기 자신이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p30 그렇기에 실패의 경험, 실패의 부정적 감정 경험은 실제이다. 하지만 게임 속 실패는 현실과 무관하다.
이다민은 그런 이유로 게임 속 실패는 나의 부정적 감정을 안전하게 관조할 기회가 된다고 한다. p30
13. "재도전할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플레이어는 인내심이나 끈기같은 미덕을 개발할 수 있게 된다." p30
(이건 너무 막 던지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직관적으로도 이건 좀 납득하기 어렵다.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닐까. 무논리 내 직관으로 말하자면 재도전이 가능하니까 오히려 여러번의 기회 제공 받음으로써 도전을 쉽게 생각하고 기회를 허비하는, 간절함이 없는 그런 마음 가짐을 가지게 되는 거 같다. 인내나 끈기있게 재도전하는 것을 끈기라고 인내심이라고 하는 건 뭔가 .. 억지스럽게 느낀 건 나뿐인가 혹은 내가 너무 게임을 백해무익 무가치한 것이라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냥 게임이 뭐 저렇게 좋은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걸 인정해주고 싶지가 않은 마음이어서 일까. )
+ 사실 나도 매번 모든 일에 실패가 많아서 재도전 재도전 인데, 재도전이라면 반복적인 도전 행위만이 아니라, 성취를 위해 애쓰고 많이 노력하는, 그런 '노력'이라는 것이 들어갔을 때 성립 되는 거지 반복적인 도전행위만으로는 인내, 끈기를 계발한다는 것은 좀 합당하지 않다 싶다. 노력 의지 없는 무한한 재도전은 끈기라기보다 오기라는 말에 더 어울리는 거 같다. 인내심도 아니고 끈기도 아니고 그냥 똘끼 같은 오기라고.
그럼, 필요충분조건은 실패에 대해 포기하지 않는 재도전 행위와 노력 의지.
14. "게임에서의 실패 경험이 현실에서의 실패보다 더 효과적이고 편리한 방식으로 재시도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현실에서의실패와 달리 게임에서의 실패 경험만이 가지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p31
난 오히려 이런 이유 때문에(쉽게 재도전 가능), 게임의 실패경험이 가치 없는 게 아닌가 생각했던 부분이다. 재시도가 편리한 방식이라면 누구도 노력을 많이 기울이지 않게 되지 않을까 대충해도 다음 기회가 주어지니까, 또 해보고 또 해보면 된다는 가벼운 마음이 전제 돼 있다면, 현실에서의 단 한번의 기회(예를 들면 목숨)와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도전을 대할 것이고, 그래서 게임에서의 가치는 현실과는 가치를 가지며 가치가 더 낮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의 실패는 게임에서의 실패보다 위험하다." p31 그런 이유로 나는 더더 게임 더 가치 없음에 한표를 던진다.)
+ (익명의 심사위원 코멘트가 밑에 있구나. 나와 같은 생각을 써 주셨다. 합리적 의심이 맞았구나 싶어서 반가움.) '현실에서의 가치보다 더 많은 긍정적 가치를 담지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며, 현실에서의 실패 경험과는 다른 종류의 고유한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것'(p31각주35)라고 이다민은 답하는데 그럼 게임의 실패가 주는 (현실실패와 다른 종류의) 고유한 가치는 무엇인가 라는 의문이 또 꼬리를 물고 남는다. (이러긴 싫은데 꼭 말꼬리 잡는 사람 같이 말이지, 혹시 인지적 윤리적 주체가 된다는 점일까? 그럼 다시 도돌이표네.)
15. "성취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게임 경험이 제공할 수 있는 위와 같은 가치들(인지적 윤리적 주체)을 포착할 수 없을 것이다."p32
일단 타비노어가 말하는 게임 경험에서의 성취가 꼭 'goal', '성공' 결과적 성공을 말하는 거 같지 않은데. 라는게 나의 생각 1이고(10번 확인), 그래서 '실패 기계'는 실패하는 경험 성취라고 생각하기에 성취에 포함 된 하나의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16. "게임 플레이어가 게임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실패의 견지에서 게임 경험의 가치를 바라볼 때 게임 경험이 가지는 긍정적인 국면을 더 폭넓고 깊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특정한 컴퓨터게임 작품들에 국한된 주장이 아니라 게임이 게임으로서 가지는 핵심적인 구조에 기인한 주장이라는 점에서 보편성과 객관성을 담보한다."p31
"이 논변을 통해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게임 겸험에서 긍정적 가치를 발견할 수 있으며, 그 가치는 게임 경험이 플레이어를 얼마나 고양시키며 즐겁게 하는 가의 여부가 아니라, 그 게임이 플레이어를 어떻게 실패하게 만드는가에 주목함으로써더 잘 드러난다는 것이다."p32
어떻게 실패하게 만드는가는 실패가 방법적인 물음같아서 실패에 따라 가치 있는 없는 실패가 있어서 어떤 특수한 실패에 한해 가치가 있게 됨을 밝혀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끝.
(나도 논변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음 조건이 성립할 때 게임이 행위성의 예술 일 수 있다. 어떤 조건이 될까)
(게임을 매체로서 (성취형 게임) / 게임을 도구로서 (자발적인 게임 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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