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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게임이 예술인가?

by flame52 2025.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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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게임은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라 문화예술의 한 갈래로 분류되기도 하지만¹, 동시에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는 ‘게임 중독’을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으로 규정하고 이를 국제질병분류(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ICD-11)에 새로운 질병 항목으로 포함시킨 바 있다². 이처럼 동일한 대상이 예술적 표현의 형식으로 간주되면서도 병리적 현상의 원인으로 지목된다는 사실은, 게임이 단일한 개념적 지위에 귀속되기 어려운 복합적 성격을 지닌다는 점을 시사한다. 따라서 컴퓨터 게임의 개념적, 규범적 지위는 여전히 철학적 탐구의 대상이며, 특히 예술철학과 윤리학의 분석적 틀을 통해 그 본질과 가치에 대한 보다 정밀한 이론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컴퓨터 게임이 예술 형식으로 간주될 수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시도한다. 특히 Grant Tavinor의 ‘상호작용적 허구(interactive fiction)’ 이론을 중심으로, 게임의 가상성(virtuality)과 허구성(fictionality)에 대한 개념적 분석을 통해 컴퓨터 게임이 예술로서 갖는 특수한 미적 지위를 해명하고자 한다³. 이 과정에서 게임의 행위 구조, 서사적 특성, 그리고 플레이어의 역할은 전통적인 예술 이론이 전제해온 수용자와 작품 간의 관계를 어떻게 재구성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궁극적으로 본 논문은 컴퓨터 게임이라는 비교적 새로운 매체가 예술 개념의 경계를 확장할 수 있는 이론적 정당성을 갖는지를 분석철학적 방법론을 통해 검토하고자 한다.

Tavinor는 컴퓨터 게임을 ‘상호작용적 허구’로 규정함으로써, 전통적인 서사 예술과 구별되는 새로운 유형의 허구적 경험을 이론화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게임은 단순히 허구적 서사를 수동적으로 전달하는 매체가 아니라, 플레이어의 선택과 행위에 의해 구성되는 동적인 서사 구조를 지닌다. 이러한 점에서 게임은 플레이어가 허구적 세계 내에서 일정한 행위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가상적 행위자(virtual agent)’의 지위를 갖게 하며, 이는 전통적 허구 이론에서 가정해온 수용자의 비행위적 위치와 본질적으로 상충한다⁴. Tavinor는 이러한 게임의 상호작용적 특성을 가상적 객체, 사건, 그리고 규칙 기반의 시스템이라는 세 가지 구성 요소를 통해 분석하며, 이를 통해 게임이 단순한 오락을 넘어 예술적 형식으로 해석될 수 있는 철학적 토대를 마련하고자 한다.

Tavinor의 ‘상호작용적 허구’ 개념은 Kendall Walton의 ‘허구적 진술(fictional utterance)’ 이론과의 비교를 통해 그 철학적 의의를 보다 분명히 할 수 있다. Walton은 허구를 일종의 ‘가상 놀이(make-believe)’로 이해하며, 허구적 진술은 일차적으로 사실을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수용자가 특정한 규칙 하에서 ‘~라고 상상하는 것’을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⁵. 예를 들어, 「셜록 홈즈」 소설의 서술은 실제 인물에 관한 진술이 아니라, 우리가 일정한 규칙에 따라 ‘셜록 홈즈가 존재한다’고 상상하게 만드는 장치라는 것이다. 이 이론에서 수용자는 허구적 진술을 받아들이는 비능동적 참여자이며, 상상은 텍스트가 설정한 규칙에 따라 유도되는 행위로 이해된다.

그러나 Tavinor는 게임의 상호작용적 구조가 이와 같은 ‘유도된 상상(instructed imagining)’의 틀을 넘어서고 있다고 본다. 게임의 플레이어는 단지 상상을 유도받는 것이 아니라, 허구적 세계 내에서 직접적으로 행위하며 그 세계의 전개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 즉, 플레이어는 단순한 수용자가 아니라 허구의 구성에 일정 부분 참여하는 존재로서, Walton의 이론이 전제하는 수동적 상상자의 위치를 탈피한다. 이로써 게임은 허구를 단방향적 전달이 아닌 쌍방향적 구성으로 전환시키며, 허구 개념 자체에 대한 철학적 재고를 요청한다.

이러한 비교를 통해 드러나는 핵심적인 철학적 쟁점은, 허구적 수용자가 단지 텍스트에 의해 유도된 상상에 머무는지, 아니면 상호작용을 통해 허구의 전개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행위자인지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이다. Walton의 이론은 전통 예술—특히 문학, 회화, 연극 등—에 있어서는 강력한 설명력을 가지지만, 컴퓨터 게임처럼 규칙 기반의 시스템 내에서 플레이어의 선택이 허구의 구성 자체에 직접 관여하는 매체에 대해서는 설명적 한계를 보인다. 다시 말해, Walton의 ‘가상 놀이’ 이론은 허구의 형성 주체로서 작가나 서사 텍스트의 권위를 강조하지만, 게임에서는 플레이어의 행위가 허구의 일부를 실시간으로 구성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형식의 행위성과 참여 양식이 나타난다⁶.

Tavinor의 분석은 바로 이 지점을 중심으로, 게임이 예술의 개념을 단순히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확장하고 재구성하는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게임은 기존 예술의 ‘표상적 형식(representational form)’을 공유하면서도, 상호작용적 규칙, 대화형 구조, 실시간 행위 참여라는 요소를 통해 허구적 경험의 형식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한다. 따라서 게임을 예술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단순히 그것을 기존 예술 범주 안에 포함시키는 문제가 아니라, 예술 개념 자체의 외연과 내포를 재검토하게 하는 철학적 작업이라 할 수 있다.


Grant Tavinor와 C. Thi Nguyen은 모두 컴퓨터 게임의 예술적 지위를 철학적으로 해명하고자 하지만, 각각의 초점은 다릅니다. Tavinor는 주로 **허구성(fictionality)**과 상호작용 구조를 통해 게임을 분석하는 반면, Nguyen은 게임의 **규칙 기반의 행위성(rule-based agency)**과 놀이의 형식을 미학적으로 해석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하지만 이 둘은 “플레이어의 행위”가 예술적 경험의 핵심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서로 보완적이고 철학적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아래 문단은 이 연결 가능성을 중심으로 구성한 것입니다:

Tavinor의 ‘상호작용적 허구’ 개념과 Nguyen의 ‘행위성의 미학(aesthetics of agency)’ 개념은, 서로 다른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지만, 플레이어의 참여가 게임의 미적·철학적 성격을 규정한다는 점에서 깊이 연결된다. Tavinor는 게임을 전통적 허구와 구별되는 새로운 예술 형식으로 해석하면서, 플레이어가 허구의 전개에 실질적으로 관여하는 ‘상호작용적 구조’를 핵심으로 분석한다. 반면 Nguyen은 게임의 미학적 가치를 오롯이 허구성에 두기보다는, 규칙이 구성한 공간 내에서 행위자가 선택하고 실패하고 학습하는 과정 자체에서 발견한다⁷. 그의 주장에 따르면, 플레이어는 단지 허구적 세계를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세계의 규칙에 따라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요청받는 존재이며, 바로 이러한 규칙 기반의 행위가 게임 특유의 미적 경험을 구성한다.

결과적으로, Tavinor의 분석이 게임의 ‘표상적 구조(representational structure)’와 ‘허구성’에 집중함으로써 무엇이 허구적으로 제시되는가를 분석한다면, Nguyen은 그 허구 안에서 어떻게 행동하게 되는가, 즉 플레이어의 체험된 행위적 역할을 중심으로 미학을 전개한다. 이 둘은 각각 허구의 구조와 *수행(agency)*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상보적이며, 게임의 예술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두 관점이 통합적으로 고려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게임은 허구를 단지 '이야기'로 제공하는 매체가 아니라, '행위 가능한 구조'로 구현함으로써, 허구에 참여하는 새로운 예술 형식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론적으로 독자적인 위상을 획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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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진흥법, 제2조 제1항 제5호.
² WHO,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11th Revision (ICD-11), 6C51 “Gaming disorder”, 2019.

³ Grant Tavinor, “Virtual Worlds and Interactive Fictions,” Philosophy and Technology 30, no. 3 (2017): 327–343.

⁴ Grant Tavinor, “Virtuality and Fiction,” in Aesthetics and the Sciences of Mind, ed. Greg Currie, Matthew Kieran, Aaron Meskin and Jon Robso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4), 221–235.

⁵ Kendall Walton, Mimesis as Make-Believe: On the Foundations of the Representational Arts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90), esp. ch. 1–2.

⁶ Tavinor, “Virtual Worlds and Interactive Fictions,” op. cit., esp. 33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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